말레이시아에서 유치원을 졸업한 아이는 6-7세 때 별다른 한글 공부는 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그냥 언어라는 것이 말만 잘하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아이는 말을 정말 잘하는 편이었다. 말이 그리 빨리 터진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 트이기 시작한 이후로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말을 하지 않는 시간이 없었다. 방대한 양의 말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휘력도 또래보다 좋았고 말이 많다는 소리와 말을 잘한다는 소리를 늘 들었다. 가끔 뉴스라도 틀어놓을 때면 모르는 단어가 들리면 바로 무슨 뜻인지 물어보기도 하고(질문이 많은 아이이다), 대화하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유치원 차에서 유일하게 말하면서 내리는 아이였다. 말을 배우는 시기에는 한국어든 영어든 자체 쉐도잉을 하루 종일 했다. 하도 혼자서도 중얼중얼 거려서 남편이 혹시 이상한 것을 보는 것은 아니냐고 걱정하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말을 잘해서인지 때가 되면 쓰는 것과 읽는 것도 자연스럽게 하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도 있었고, 쓰기는 초등학교 들어가서 해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아이의 한글 쓰기 능력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매일 책을 읽어주는 것도 쉽지 않았다. 별생각 없이 갔던 타국에서 한국어 책 구하기도 힘들었고, 다양한 언어를 배우는 것도 버겁겠지 하는 마음에 그냥 들려주는 동화로 위안을 삼았다. 그 당시에는 한국어보다는 영어를 조금이라도 늘려가고 싶은 욕심에 한국어 책보다는 온라인 쇼핑몰인 LAZADA나 SHOPEE에서 영어책을 구입하여 읽어주곤 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니 괜히 마음이 초조해졌다. 뒤늦게 받아쓰기 책을 사서 엄마표 받아쓰기를 시작하다가 아이와 다투기도 했다. 3일을 하고 이건 안되겠다 싶어 그냥 평화협정을 맺고 그만두었다. 이제 생각해 보면 아이의 흥미와 상관없는 접근 방식에 괜한 거부감을 주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아무 준비 없이 1학년이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1학년 담임선생님은 공부보다는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더 집중하셨다. 다른 반은 다 진행했던 받아쓰기 시험도 우리 반은 1학기가 지나고 2학기가 훌쩍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시작하셨다.
하루는 첫 번째 받아쓰기 시험을 봤다며 아이가 30점의 받아쓰기 점수를 받아왔다. 해맑게 자신은 30점을 받았다고 이야기해서 딱히 할 말이 없던 나는 웃으며 "아.. 다음엔 좀 더 공부를 조금만 해볼까?"라고 했더니 아이는 "아.. 엄마..? 그렇게밖에 이야기하지 못하겠어?"라고 대답했다. 그냥 쿨하게 우리는 대화를 마무리했다.
다음엔 조금씩 공부를 해서 그 점수보다는 조금 더 좋아지긴 했지만 크게 대단한 점수는 내지 못한 채 1학년은 마무리되었다.
한국의 초등학교에서는 1달에 15권의 책 읽기를 권장했다. 책을 읽고 책 제목, 저자, 읽은 날짜, 그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 한 줄 쓰기를 해서 한 달의 마지막 날 노트를 내면 1달에 15권을 달성한 아이에게 배지를 수여하는 형식이었다. 아이가 배지를 받고 싶어 하기도 했고, 그 미션을 수행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아이의 책 읽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이 수준에 맞는 책을 자연스럽게 일주일에 한 번 검색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기도 하고, 책을 구입해서 읽어주기도 했다. 말레이시아에 가기 전만 해도 하루에 꼭 4권씩(아이가 고른 책 2권, 엄마가 고른 책 2권) 잠자기 전에 읽어 주곤 했었는데, 말레이시아에서는 독서량이 너무 적었던 터라 보통 1학년 수준보다는 조금 낮은 수준의 책부터 차근차근 읽었다.
덕분인지 신기한 스쿨버스 정도의 글 밥 수준, 그보다 더 낮은 수준도 더듬더듬 읽었지만, 요즘엔 시공주니어 1단계 수준을 자연스럽게 읽고 있다. 아직은 한 장씩 같이 읽기로 읽고 있지만(혼자서도 가능하지만 꼭 함께 읽어주는 것을 아직은 좋아한다), 1년간 같은 또래와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
2학년이 시작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받아쓰기도 하기 시작했다. 시험 보기 전에 자연스럽게 한 번씩 엄마의 테스트를 거치고 외워가더니 이젠 90점을 받아오기 시작했다. 꼭 한 문제씩 틀리지만 1학년 때의 저조한 성적에 비교하면 아주 놀랍게 성장한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책 읽어주기가 힘든 날 아직도 오디오 동화를 들려주곤 한다. 매일 책을 읽어주면 좋겠지만 사실 부담스러운 날도 있기에 적절히 활용하면 좋다. 특히 외국에 있을 땐 한국어 책을 구하기가 어려워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다.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동화책을 읽어주신다. 주로 유치원생이 들을만한 수준의 내용이다. 10~20분 내외의 콘텐츠들이 대부분이고 자극적인 내용이 없어 잠자기 전에 활용하면 좋았다.
처음에는 동화로 시작했는데 요즘엔 미스터리 내용이 나온다. 아이에게 조금 무섭게 느껴질만한 내용도 있는데 내용이 흥미로워서 엄마에게 꼭 붙어서 들으며 잔다. 랑이 언니 동화보다는 조금 큰 초등학생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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