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한국에 오자마자 했던 일이 육아책 보기, 학원 알아보기였다.
아이를 키우면서 육아 불안감은 늘 백화점 정기세일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내가 잘하고 있나, 이게 맞는 건가, 자기 전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보고 오늘 화내고 짜증 부린 것에 대한 반성을 하고, 또 다른 육아서적을 찾아 읽으면서 자기 위안을 삼는다. 불안감, 육아서적의 핵심 키워드는 늘 불안감과 연결되어 있다. 엄마의 불안은 아이의 불안이 된다. 엄마의 불안 요소를 없애고, 끊임없는 인내로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지켜봐 주는 것, 모든 육아 서적 및 학습 서적은 이것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다. 왜 알면서 실천은 쉽지 않을까.
메타인지란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아는 것, 나의 인지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능력이다. 이 모니터링 능력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모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책에서는 메타인지를 키우려면 자기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판단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며, 파악하는 주체는 부모가 아닌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많은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잘 안다고 착각하고, 아이에 비해 경험과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부모는 아이의 메타인지 능력을 과소평가한다. 때문에 많은 부모가 자녀의 메타인지 능력을 키워준다는 명목으로 아이의 인지를 자신들이 판단하고 결정한다. 아이가 자기 스스로 메타인지를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부모가 빼앗는 셈이다.
부모는 '학습화된 세 가지 착각'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잘못된 기대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아이의 메타인지 발달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이 책에서는 부모와 아이를 혼란으로 빠뜨리는 학습화된 세 가지 착각은 다음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1. 빠른 길이 좋다고 생각한다.
2. 쉬운 길이 좋다고 생각한다.
3. 실패 없는 길이 좋다고 생각한다.
잠깐 동남아에서 살다가 한국에 와보니 조급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나도 모르게 다른 아이들은 학원을 어딜 다니는지, 선행학습 정도는 얼마나 되는지 등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아이는 "handsome boy", "special boy"로 불렸었다(한국인이 많지 않은 동네인지라 선생님들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았다). 거기에선 단지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언어를 하나 더 할 줄 알았고, 말레이시아어, 중국어, 영어에 한국어까지 하니 너는 정말 대단하고 특별하다며 치켜세워주기 일쑤였다.
이런 코리안 보이가 한국에 오자 역시나 그저 평범한 학생이 된 아이는 한동안 자존감이 하락하는 듯했다. 한국어 읽고 쓰는 수준이 한국 친구들에 비해 떨어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조급하게 생각하여 받아쓰기를 하고 글밥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더니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엄마의 불안 요소가 아이의 불안 요소가 된 셈이었다.
한국 엄마들은 공부에서든 예체능 활동에서든 뭔가를 배운다면 그저 빨리 익히기만을 바란다. 본인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느리게 배웠다는 사실을 잊은 채 아이의 학습 속도 향상에만 관심을 둔다. 배움의 과정이 주는 다양한 의미와 재미를 무시하고 속도에만 집중하면 아이의 메타인지는 망가질 수 있다고 한다.
주변엔 늘 "엄마 친구 아들"이 존재한다. 타인의 속도에 맞추느라 내 아이의 메타인지를 망치고 있진 않은지, 조급함을 버리고 아이의 속도를 지켜보자. 학습 속도가 빠른 아이가 꼭 똑똑한 것은 아니라는 것!
아이와 문제집을 풀다 보니 정말 알고서 푸는 건지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 때가 많았다. 리딩게이트 문제를 풀 때도 모르는 단어가 많아 보였는데 대충 들리는 것에 의존해서 푸는 듯했고, 수학 문제나 국어문제 중에 서술형에 취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아이에게 아는 것을 설명해 보라고 했지만 아는데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저자가 한국에서 가장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학생들이 토론 혹은 그와 비슷한 학습 방법을 거치지 않고도 많은 성과를 낸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과의 이유가 객관식 위주의 시험에서 비롯됨을 알게 된다. 학생들 입장에서 객관식 시험은 수업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필요가 없다. 정답만 외우거나 근사치에 가까운 답만 고르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문제를 잘 풀면 마치 내가 다 알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한다.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국 교육과 국제학교에서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이 부분일 듯하다.
국제학교는 기본적으로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토론하고 정리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문제만 잘 풀고 점수가 잘 나와야 하는 한국 교육과는 제시하는 방향이 다르다. 이러한 부분에서 아이의 국제학교 경험은 메타인지를 발전시키는 데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고등학교 때라면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 힘들어서 주저했겠지만, 또다시 조급함이 없는 곳에 가서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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